2024년 08월 26일

<척하는 삶> 리뷰

베들리런에 사는 하타는 평화롭지만 이상하게도 외로운 존재다. 그는 수영장, 산책, 집 수리와 같은 그의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불안과 잠재적인 고통 없이 완벽하게 고요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하타는 그렇게 혼자 사는 노년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평온한 삶은 딸 서니와 주변 인물들로 인해 조그마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 조그마한 틈을 통해 그의 과거를 조망하고, 현재와 비교하여 우리에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타인의 인정 그리고 관계를 바란다. 하타의 경우 주류에 진입하고자 하는 외부인이었기에 그러한 희망이 특별히 부각되었다.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한국인이었고, 미국인이 되고자 했던 일본인이었다. 이 부분이 소설의 묘미인 듯하다. 한국계 일본인이 미국에서 산다는 흔치 않은, 그러나 있을 법한 설정을 통해 타인과의 미묘한 관계에 고민하는 양상을 선명하게 부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베들리런이라는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은 한국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일본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의 재판이었다. 좋은 부모님과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성실함 때문에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듯한 그의 일본 사회 적응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가 한국 태생이라는 본질적인 이질성을 드러낸다. 결국 그는 자신의 편이라 여겼던 K를 위해 오노 대위와 반대편에 선다. 그러나 하타는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선택 받지 못했다. 오노 대위와 끝애의 말 중 어느 게 진실인지 가려지지도 않은 채 하타는 홀로 남겨졌다.

딸은 미국 사회에 편입하려는 하타를 힐난한다. 무의미한 허상을 쫓는 허망한 노력이라고. 하타와 비슷하게 사회의 경계에 걸쳐 있던 딸은, 사회에 진입하려는 하타의 노력 때문에 모호해진 그의 정체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더욱 안타깝게도 전쟁에서의 슬픈 기억으로 인해 하타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비극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며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더 모호한 존재로 남겨놓는다.

그러나 하타는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래, 이미 그때 50을 넘긴 양반인데 굳어진 정체성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지 싶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러한 성품이 눈치 보는 주변인의 특성이기 이전에 이미 그의 고유한 정체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틈바구니에 낀 주변인으로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바라고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픈 소소한 욕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서니를 위해, 그리고 그가 미처 바라보기 힘들어하며 죄의식을 가졌던 하키 가족을 위해, 그가 인생 후반기를 통해 일구어 놓은 베들리런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저택을 포기하고 그 결과물을 모두 내어놓는 선택을 한다. 그가 단지 미국 사회에 안착하기 위한 몸짓을 해왔다면 있을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일상에 젖어 그 관계의 소중함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하타에게는 그 소소한 관계가 있는 힘껏 노력을 해야 힘들게 얻을 수 있는 귀한 대가였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